


구 여의도 사옥
1987년 승용차 시장에 재진입한 이후 기아는 고유모델을 연이어 출시하며 수출 100만 대를 돌파하는 등
외형적 성장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고유모델 개발과 생산 확대에 따른 막대한 투자 비용이 재무 부담으로
이어졌고, 여기에 동아시아 외환위기까지 겹치면서 유동성 위기가 찾아옵니다.
결국 1997년, 기아의 부도유예협약1이 전격 발표되며,(1997.07)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게 됩니다.
1) 부도유예협약: 기업의 부도 처리를 일정 기간 유예하고 경영 정상화를 지원하는 제도로, 기업의 연쇄 도산을 방지하기 위해 1997년 도입되었다

기아가 부도 위기에 처하자, 시민사회, 노동계, 문화계 등이 연대한 기아 살리기 운동이 전개됩니다.
오랜 기간 국민의 곁에서 함께 격랑을 헤치며 성장해 온 기업을 지키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입니다.
기아자동차 구매 운동, 서명 운동, 당대 스타들의 무료 광고 출연 등 많은 응원과 연대가 이어졌지만, 경제
위기에 직면한 한국의 상황과 함께 기아의 회생도 불확실한 국면에 들어섭니다.

부도유예협약 발표 3개월 만인 1997년 10월 기아의 법정관리가 발표되고, 이듬해 5월 기아의 제3자 매각이
본격화됩니다. 당시 현대자동차의 모기업 현대그룹이 공식적으로 인수 의사를 밝혔고, 국제 경쟁입찰을 거쳐
현대자동차가 기아의 최종 인수자로 결정됩니다. 인수 배경에는 한국 자동차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하려면 규모의 경제가 필수라는 판단 아래 내린 정주영 창업회장의 결단과 정몽구 명예회장의 추진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결정은 한국 자동차 산업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