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분발로 이룬 <br>기아의 르네상스도전과 분발로 이룬 <br>기아의 르네상스

도전과 분발로 이룬
기아의 르네상스

2장. 1974 - 1994

1974

기아 첫 승용차
산들바람 ‘브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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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오일쇼크로 연비 효율이 뛰어난 소형차가 각광받기 시작합니다.
기아도 시대 변화에 맞춰 경제적인 국민차 생산을 목표로 자체 생산 엔진을
장착한 1000cc 브리사를 출시합니다.(1974.10) 승용차와 더불어
택시 영업용으로도 수요가 많아 서울 시내 택시의 절반이 브리사일 정도로
인기를 끈 브리사는 산들바람을 뜻하는 이름처럼 국내 승용차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습니다. 브리사보다 먼저 출시된 브리사 픽업 10대가
카타르로 수출되며(1975.09) 완성차 수출길의 물꼬를 튼 기아는, 이후 해마다
수출국과 수출 모델을 늘려가며 글로벌 시장 진출의 기반을 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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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사 픽업 생산 라인

1975

방위산업 진출과
기아기공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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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는 당시 정부의 요청에 따라 군수장비를 비롯한 특수차량 생산을 위해 경상남도 창원에 별도 법인
삼원제작소를 설립하고(1975.12) 공장을 건설합니다. 이듬해에는 방위산업 전문성을 갖춘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하고(1976.10) 1977년 삼원제작소의 사명을 기아기공으로 변경합니다. 기아기공은 다양한 군수장비와
특수차량을 양산하며 기아의 생산 역량을 확장했습니다. 방위산업용 장비와 특수차량 사업은 지금의 기아
특수사업부로 계승되어 이어지고 있습니다.

1981

위기에서 피어난
봉고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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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발생한 2차 오일쇼크로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자, 정부는 자동차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제조사별 차종 전문화를 핵심으로 한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를 발표합니다.(1981.02) 승용차 생산이 중단된
기아는 12인승 승합차 ‘봉고 코치’를 출시하고(1981.08) 전사적 역량을 봉고 판매에 집중하며 위기의 돌파구를
모색합니다. 활용성과 경제성을 갖춘 봉고는 레저 인구, 소상공인을 비롯한 다양한 수요층을 공략하며
1985년까지 약 19만 대가 판매됩니다. 봉고의 활용에 힘입어, 기아는 1983년
100대 상장기업 중 순이익 1위를 달성합니다. 한국에서 봉고는 승합차를 지칭하는 보통명사로 통용되며,
20세기를 대표하는 히트 상품으로 자리매김합니다.

1983

농촌형 만능 트럭
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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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고의 성공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던 기아는 독자 기술로 개발한 농촌형 트럭 세레스를 선보입니다.(1983.11)
세레스는 양수와 탈곡 작업에 필요한 동력인출장치를 갖춰 농업 현장에 힘을 보탰고, 같은 시기 출시된 봉고
트럭과 동일한 적재량을 지니면서도 약 30% 낮은 가격에 판매되어 농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자전거와 삼륜차에서부터 이어져 온 ‘시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차량을 만들겠다’는 신념의 결과였습니다.
세레스는 이후 동남아, 중남미, 유럽, 중동 등지로 수출되며 대한민국 농촌을 넘어 세계 각지에서 활약합니다.

1986

대한민국 최초,
세계 세 번째 전기차 베스타 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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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기아기술연구소1가 설립되고(1981.10) 주요 차종 개발과 엔진 연구가 활발히 이어지며 기술 중심의
경영이 강화됩니다. 특히 봉고의 후속 모델 베스타를 기반으로 개발된 대한민국 최초, 세계 세 번째 전기차
베스타 EV는(1986.06)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마라톤 중계차로 활약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마라토너들이 매연 없이 달릴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된 베스타 EV는 기아 전기차 여정의
시작점입니다.

1) 기아기술연구소: 다양한 연구와 설계를 수행하며 기아의 두뇌 역할을 했던 곳으로, 1984년 기아중앙기술연구소로 이름을 변경했다

1987

Pride of Korea,
기아의 프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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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한국은 경제 고속 성장과 올림픽 등 국가적 행사를 계기로 큰 도약을 이룹니다. 이런 흐름 속에
기아는 글로벌 전략의 일환으로 월드카 프로젝트에 착수하며, 포드∙ 마쓰다와 함께 한∙미∙일 3국 협력 체계를
구축합니다. 기아가 생산을, 마쓰다가 설계를, 포드가 판매를 담당해 태어난 글로벌 협업 차량 프라이드는
수출명 페스티바로 미국에 먼저 수출됩니다.(1987.01) 1999년 단종까지 총 145만 대가 생산된 프라이드는,
생산 차량 중 50% 이상이 북미를 비롯한 38개국에 수출되며 기아 글로벌 진출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기아의 승용차 시장 복귀를 알린 차량이자 ‘마이카 시대’를 연 대표적인 차량입니다.

1990

‘기아자동차'로의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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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만 공장 (현 AutoLand 화성)

프라이드의 성공을 바탕으로 기아는 더 넓은 시장을 향한 도약을
준비합니다. 자동차 전문 기업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해
사명을 기아산업에서 기아자동차로 변경하고(1990.03)
자동차도 만드는 종합 제조기업이 아닌 ‘자동차 전문 기업’으로서
미래 비전을 새롭게 설정합니다.
같은 해, 아산만 공장도 준공합니다.(1990.11) 연산 60만 대 규모를
목표로 약 100만 평 부지에 세워진 아산만 공장은, 1990년대 말
평택항 개항으로 바닷길이 열리면서 기아의 수출 전진기지이자
미래를 책임질 전략 거점으로 자리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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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만 공장 준공식

1991

기아 첫 고유모델
세피아, 스포티지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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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사, 봉고, 베스타, 프라이드 등을 차례로 선보이며 기술력을
키워온 기아는 다음 목표인 고유 모델 개발을 시작합니다.
당시 보기 드문 세련된 외관으로 주목받은 세피아와 기존 오프로드
SUV와 차별화된 디자인과 성능의 스포티지를 자체 기술로 완성해
도쿄 모터쇼에 출품하며(1991.10) 기술 자립의 성과를 이룹니다.
특히 스포티지는 1990년대 변화된 도로 환경과 소비자 니즈를 반영한
세계 최초의 도심형 SUV로 주목받았고, 오랜 시간 진화를 거듭하며
기아를 대표하는 최장수 모델로 자리 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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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 생산 개시 축하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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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과 추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