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산업’의 꿈‘바퀴산업’의 꿈

‘바퀴산업’의 꿈

1장. 1944 - 1973

1944

기아의 시작,
경성정공 창업

‘바퀴산업’의 꿈

경성정공주식회사 영등포 공장

1944년 기아의 창업자 김철호는 공업 입국1의 사명감으로 경성정공주식회사를 설립합니다.(1944.12)
당시 산업 대부분이 군수 중심으로 재편되고 물자 수급도 쉽지 않았지만, 그는 조국의 기술 자립을 꿈꾸며
자전거와 자전거 부품의 국산화에 도전했습니다. 특히 기술 확보와 기술 인재 육성에 대한 그의 집념은
기아의 기술 중시 경영 철학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의 철학을 바탕으로 경성정공은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타이어, 페달, 안장 등 핵심 부품을 개발하였고, 마침내 국산 안장을 홍콩에 수출하며
첫 해외 시장 진출을 이뤄냅니다.(1949.08)

1) 공업 입국: 기계공업 진흥을 통한 조국과 민족에의 공헌을 뜻한다

1952

아시아에서 일어나 세계로
‘기아산업’

‘바퀴산업’의 꿈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경성정공은 부산으로 공장을 이전하며 국산 자전거 개발의 의지를
이어갑니다. 당시 기술력으로는 쉽지 않았던 자전거 림 제조에 성공한 경성정공은, 세계 시장을 향한 포부를
담아 사명을 기아1산업으로 변경하고(1952.02) 자전거 개발에 매진한 끝에 한국 최초의 자전거 완제품
3000리호2를 선보입니다.(1952.03)

1) 기아(起亞, Kia): 아시아에서 일어나 세계로 나간다는 의미

2) 3000리호: 한반도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의 거리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다

1957

자전거에서
오토바이로

‘바퀴산업’의 꿈

1957년 기아는 시흥에 새로운 공장을 세우고, 부산공장의 자전거 생산 시설을
이전합니다. 이곳에서 자전거 생산에 필요한 파이프를 자급자족하게 되면서
자전거 생산량은 월 3,000대를 넘어섭니다. 기아는 자전거의 안정적인 생산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오토바이로 사업을 확장하며 첫 번째 오토바이 C-100을 출시합니다.
오토바이 생산은 기아가 엔진을 장착한 이동 수단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바퀴산업’의 꿈

기아 시흥공장 현판

1962

시대 요구를 반영한 도전
삼륜차

‘바퀴산업’의 꿈

기아는 첫 번째 자동차로 소형 삼륜차 K-360을 선보입니다.(1962.01) 당시 좁고 가파른 도로가 많던 시절, 삼륜차는 화물 운송에 최적이었습니다.
도시 간 물류 이동이 활발해지던 1960년대 중반에는 적재 용량
2톤의 중형 삼륜차 T-2000이 출시되어(1967.01) 주요 산업도로를 오가며 화물 수송을 책임졌고, 삼륜차는
한국 경제의 고속 성장 흐름을 타고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어 출시된 소형 삼륜차 T-600(1969.08) 역시 골목길이 많은 도심에서 활약하며 용달차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습니다. 삼륜차의 수요 증가에 힘입어 기아의 자동차 매출은 자전거와
오토바이의 매출을 뛰어넘게 됩니다.

1973

소하리 공장과
국산 엔진 개발

‘바퀴산업’의 꿈

소하리 공장 (현 AutoLand 광명)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은 1960년대 말, 고속도로 건설이라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기아는 종합 자동차 공장 건설과 첫 사륜 트럭인 타이탄, 복사를 출시하며(1971.09)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당시 한국 최대 규모의 자동차 공장이자 한국 최초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한 소하리 공장
준공으로(1973.06) 기아는 연산 2만 5,000대 규모의 생산 능력을 확보하게 됩니다. 같은 시기, 해외 자본과
기술을 활용한 업체들의 등장으로 시장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가운데, 기아는 국산 엔진과 자동차 개발에
매진하며 꾸준히 경쟁력을 키워갑니다. 그 결과 1973년, 국내 최초의 자동차 전용 엔진을 자체 생산하고
일본에 수출까지 하게 됩니다.(197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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